[Vol.170] 🎀 예쁘게 사는게 내 철학이야

삶을 예술로 만드는 법, '유미주의'

2024.07.05 Vol. 170

영국 라파엘 전파 창단 멤버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가 그린, 유혹적이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지닌 리리스의 초상화. (1868) © Delaware Art Museum, Wilmington, DE, USA.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안녕하세요, 아램이에요! 🙋🏻‍♀️
오늘 아트레터는 우리에게 친숙한 김영랑 시인의 시구로 시작했습니다. 영랑은 ‘절대적 아름다움’,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기다리며, 슬픔마저도 아름다운 찬란함으로 승화했습니다. 이러한 역설은 영랑을 유미주의(aestheticism), 또는 탐미주의의 본질을 잘 나타내는 시인으로 만들어 주었죠. 🌺 (이름마저도 아름다워..)

눈치 채셨겠지만, 이번 시간에는 유미주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이라는 구호로 일축되는 유미주의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멋지게 살아내자’고 주장하는 철학이에요. 오늘만큼은 무언가를 배워야겠다는 목표의식에서 벗어나 우리의 감각과 감성에 귀 기울이며,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아름다움에 미친 철학
Lawrence Alma-Tadema, In A Rose Garden
집을 어떻게 꾸밀지, 어떻게 옷을 입을지, 무엇을 읽을지, 어디를 갈지 고민 중이라면? 나아가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을 만큼, 예쁘고 미니멀하면서도 패셔너블한 그 무엇을 원한다면? 당신은 이미 유미주의자입니다. 👊

언제, 어디서?

유미주의는 19세기 영국에서 등장했으며, 주로 프랑스 문학과 시각 예술의 영향을 받았어요. 이 운동을 위해 조직된 그룹은 없었지만,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중반부터 활동했던 라파엘 전파의 영향이 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미(美)를 인생에서 가장 지고한 가치로 봤어요. 예술의 목적은 미(美)의 창조이며, ‘아름다움이 최고다’라고 주장했죠. 유미주의자들은 정신보다는 감각을, 내용보다는 형식을, 현실보다는 공상을 중시하고 미를 진과 선 위에 두며, 때로는 악에서까지 미를 발견하는 특성을 보였습니다. 😈
Dante Gabriel Rossetti, Beatrix (1862)
19세기 무렵 산업혁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얻은 귀족이나 자본가 등 상류층은 실용적 가치를 가진 응용예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실용성과 효율성만을 추구했고,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예술을 경시하기 시작했어요. 이러한 상황을 탐탁지 않게 여긴 유미주의 세력은 ‘인간을 위한 예술’에 반발하며, ‘예술을 위한 예술’을 외쳤습니다. 그동안 인간의 행복 추구와 감정 표현, 그리고 인생상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을 해왔다면, 유미주의는 인간이 아닌 예술 자체를 위한 순수 예술을 추구하며 이전의 흐름을 깨뜨린 것이죠. 🫦

대량 생산? NO! 장인 정신으로 승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와 에드워드 고드윈이 디자인한 "공작의 방"은 유미주의 실내 디자인의 대표적인 예이다.
유미주의 운동은 산업 생산, 특히 대량 생산된 저렴하고 반복적인 디자인의 소비 제품에 반대했습니다. 이들은 많은 곡선 장식과 디테일이 넘치도록 풍부한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한 장식 취향에서 벗어나길 원했어요. 유미주의 양식은 톤 다운된 차분한 색상으로 칠해졌거나 기하학적 디자인의 벽지를 사용했으며, 가구는 단순한 선형 형태가 주를 이뤘습니다. 영감의 원천은 라파엘 전파 회화와 영국 중세 예술, 그리고 일본의 동양미가 주요 모티프가 되었죠. 🔳

아름다움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 미장센
📃 시와 산문은 유미주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프랑스의 샤를 보들레르테오필 고티에는 시가 독자에게 꼭 교훈을 줘야 한다는 통념에 반대했어요. 영국 시인 찰스 A. 스윈번도 그들과 동의하며, 아름다운 시적 형식과 완벽한 작품이 어떤 주제든 감탄할 만하게 만든다고 했죠. 언행일치로 그는 폭력성이 짙고, 기성 성관념에 일탈하는 시를 썼는데, 이는 당시 순수한 빅토리아인들에게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

유미주의의 이러한 전통은 현대에도 이어져오고 있어요. 국내에서 유미주의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영화감독 박찬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작품을 통해 무언가를 일깨워줘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지극히 아름다운 영상미와 그것을 최대치로 느낄 수 있도록 짜여진 플롯을 통해 감탄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의 영화 주제는 복잡하고 심오하지만, 관객에게 시각적인 쾌락을 주면서 아름다움 그 자체를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하죠.

삶은 예술을 모방한다
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Caprice in Purple and Gold-The Golden Screen (1864)
유미주의가 발생하기 전, 즉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예술의 사회적 기능, 즉 ‘예술을 통해 교육과 계몽이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은 신으로부터 재능을 부여받아 사회를 개선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고 느꼈죠. 반면, 유미주의는 오로지 예술의 아름다움이 가진 특성과 순수한 즐거움을 강조했습니다. 🦄

유미주의 반대자들은 유미주의가 일종의 쾌락주의이며, 쓸모없이 예쁘기만 한 것들이라고 반발했어요. 이는 악의적으로 개념을 단순화한 것으로, 언론에서까지도 유미주의를 풍자하곤 했습니다. 한 만화에서는 점심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대신 백합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이들의 모습이 그리며,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오스카 와일드 등 유미주의 핵심 세력을 풍자했죠. 

하지만 유미주의의 핵심은 아름다운 예술을 추구함으로써 우리의 삶도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술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고, 감각을 되살리며 새로운 차원의 미적 쾌락을 느낄 수 있어요. 따라서, 삶을 예술처럼 가꾸고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우리 삶은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삶은 예술을 모방하며, 그 과정에서 더욱 빛이 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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