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비안 마이어: 보모 사진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현상하다


20세기를 빛낸 작품을 탄생시킨 롤라이플렉스를 든 보모, 비비안 마이어의 본모습을 조명하는 공식 전기가 출간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표정을 다 담은 듯 개성 넘치고 유머러스한 거리의 사람들,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완벽한 구도로 보여주는 도시의 풍경들, 소외되고 취약한 이들을 향하는 따뜻하고 연민 어린 시선, 그리고 진지한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면서도 분열하는 듯한 묘한 자화상들. 이 모든 것을 완벽한 프레임과 타이밍으로 잡아낸 작품들은 하나같이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도 비범한 아름다움을 포착한 작가, 우리가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에서 시선을 뗄 수 없는 이유다.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은 무려 8톤 가까이 되는 창고에 잠자고 있던 15만장의 사진은 창고 주인의 채무 불이행으로 경매에 부쳐지기 전까지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었다. 2007년 시카고의 한 경매장에서 집필 중인 책에 실을 사진 자료를 찾기 위해 존 말루프가 현상하지 않은 필름으로 가득한 박스를 구매했을 때, 그리고 그중 몇 개의 필름을 시험 삼아 인화했을 때만 해도, 누구도 그 안에 어떤 잠재력을 가진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첫 시작은 인터넷 사진 사이트였다. 말루프가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 일부를 사진 공유 사이트에 올렸을 때, 사람들은 곧바로 열광했다. 스무 장 남짓한 사진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비비안의 작품을 추가로 공개할 때마다 이 무명 작가의 업적과 재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쌓여갔다. 언론은 경이로운 사진작가의 출현을 앞다퉈 기사에 실었고, 시카고를 시작으로 세계 각지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비비안 마이어 현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 모든 열기에도 작품의 주인인 비비안 마이어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왜 사진을 찍었고 어떤 이유로 그것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았는지, 무엇보다 15만장의 사진을 찍을 정도로 열정적인 사진작가가 대체 왜 자신의 작품을 창고에 버리듯 방치했는지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었다. 


북하우스가 출간한 <비비안 마이어: 보모 사진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현상하다>는 그의 작품보다 더 오랫동안 봉인돼 있던, 이 비밀스러운 사진작가의 미스터리한 삶을 마치 한 편의 추리극처럼 치밀하고 끈질기게 추적해 풀어낸 역작이다. 


8톤의 창고에는 사진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가 생전 입었던 옷과 소품들, 산더미처럼 쌓인 신문이나 잡지 같은 수집품들, 그가 현상용 봉투나 간헐적으로 쓴 촬영 일지에 끄적인 메모들, 그밖에 자질구레한 유품들을 단서로 누구도 찾지 않아 먼지 더미에 묻혀 있던 문서 보관소의 기록들을 토대로 비비안 마이어의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둘 맞춰나간다. 


그렇게 드러난 삶은 비비안 마이어에 관한 가장 강력한 신화인 “그가 소외됐고, 불행했고, 무엇도 성취하지 못한”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는 신화를 무너뜨린다. 사람들은 비비안 마이어가 입주 보모로 일을 하며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고, 극히 제한된 인간관계만 맺었으며, 말년에는 창고 비용을 지불할 경제적 능력조차 없었을 거라는 이유로 비비안 마이어를 ‘비운의 예술가’로 손쉽게 치부해버린다. 이 책에서 최초로 밝혀지는 비비안 마이어의 가족사, 혼외 관계와 중혼, 부모의 방임과 약물 중독 등으로 얼룩진 그의 성장 배경 또한 사람들의 짐작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비비안 마이어의 저자는 마치 카메라의 아웃포커싱 기술처럼 비극적인 가족사에서 빠져나와 그런 환경에서 독립적인 여성이자 열정적인 예술가로서 비비안 마이어가 취했을 ‘선택’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남들만큼 감정을 드러내고 관계를 형성할 능력이 없었던 사람이 마침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을 때,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면밀하게 추적해나간다. 비비안 마이어에게 그것은 사진이었고, 그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듯 풍부한 감정과 인간미,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성 넘치는 포트폴리오로 나타났다. 


비비안 마이어는 자신의 삶이 가장 어두운 그늘에 갇혀 있을 때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그에게 사진은 세상과 이어지는 연결고리였고, 자신이 원할 때면 언제라도 그 세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작품으로 증명했다. 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을 다면적이고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비비안 마이어는 불리한 태생적 조건을 무한한 회복력으로 이겨내며 자신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로 비비안 마이어를 복원한다. 그리하여 무심한 겉모습 뒤에 지성과 연민과 영감으로 가득한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이, 타고난 능력으로 자신의 작품들을 금세기 사진 분야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로 만들 예술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비비안 마이어는 대표 작품뿐 아니라 이제껏 지면에 공개된 적 없는 사진까지 4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실어 비비안 마이어에 관한 가장 광범위한 아카이빙으로 소장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펼쳐지는 사진전에 발맞춰 출간된 책은 전시회에 앞서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히고 있다. 


마치 슬라이드 강의를 듣는 것처럼 수백 장의 사진과 함께 펼쳐지는 이야기는 예술가의 작품만큼이나 그 삶 또한 남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을 더 풍부하게 해석하고 음미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놓쳐서는 안 되는 책이다. 


  •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 앤 마크스 저/김소정 역 | 북하우스 | 32,000원